의미들의 끝없는 번식이라고 해야 할까, 카프카의 작품은 끝없는 메마른 사막을 걸어가는 듯한 답답함을 안겨준다. 그의 수많은 단편집을 독파해가며 가슴속에 차오르던 답답함은 '변신'에 이르러서야 폭발하게 되었다. 그의 글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들에게 보란듯이 글의 진행을 틀어버리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 그 능력은 이미 나의 인내심, 혹은 프란츠 카프카를 향한 도전의식을 불태워 없애기에 충분하다.

시작이 어디며 또한 끝이 아니어야만 하는 순간에 끝나버리는 그의 작품들은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손이가고 눈이가는 이유는 뭘까. 어둠의 방 안에서 내 뒷덜미를 잡아 이끄는듯한 이 묘한 당혹감은 그의 친구 막스 바로트를 통해 발간된 그의 작품들을 통해 어느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매일같이 연속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외적인 변화들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라는 존재는 과연 나라는 인생의 주인공을 이끌어내고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고 일어나보니 바퀴벌레 혹은 말똥가리 벌레로 변해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빗자루를 들고 당신을 때려죽일것처럼 달려든다면? 당신의 입밖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는 이미 당신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이 뒤틀려버린 환경을 당신을 어떻게 적응해나갈 것인가? 체념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당신의, 가족을 위한 '살신성인'적인 중대한 발표를 뒤로하고 외로운 죽음을 택할 것인가, 에프킬라에 의해 온몸이 굳어져 비통한 끝을 맞이할 것인가. 요즘같이 '나' 자신을 잊고살아가는 우리 자아들에게, 카프카는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이 변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변신의 덫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것인가 하고. 세상에는 나의 변화 혹은 변신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까운 관계가 있냐하면, 청소를 위해 그 집에 들락거렸던 파출부와도 같이 그저 나를 제삼자로 보는 관계들도 적지 않다. 당신이 연결되어있는, '좋아요'를 연신 클릭해주는 그들은, 과연 당신의 변신을 얼마나 긍정적 혹은 마음을 다하여 받아들일까? SNS속에 존재하는 그 많은 존재들이, 과연 당신앞에 '지금' 앉아있는 그보다 중요한가? 

기억하라, 우리의 세계는 SNS보다 넓은 것을. 당신의 발자국이 필요한 곳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cafe Monde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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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잠이 덜 깬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무심결에 보던 인터넷 뉴스에서 안선영씨의 '실언' 혹은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을 본 사람들의 생각을 읽게 되었다.
실언이라는 가정하에 보게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말임에 틀림없다. 재미를위한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에서 엔터테이너의 명분하에 웃음꽃을 위한 뱉은 말이라고 하기엔, 시청자 연령대가 절묘하게 최악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잣대가 있고 그 잣대를 기준으로 선과 악이 존재하지만, 그 잣대를 타인들에게 피력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기본 선심을 지키려는 깨어있는 자들에게 안선영씨의 '개인적인' 생각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던 것 같다. 배우자를 고르는데에 있어 누가 충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막연한 기준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것은 다양성의 관점을 놓고 봤을 때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할 수있다. 안선영씨의 말은 너무 많은 남자들의-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내 월급보다 백만원 덜 버는 여자를 만나야겠군, 하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곧 일만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며 안선영씨를 몰아세우는 모두는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되버렸다. 그 실언하나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았다. 이런 이유로 보았을 때 결국 입은 무거워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한다'는 관점에서 볼까.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하에 보았을 때 안선영씨의 말은 틀리다 맞다의 기준점은 참으로 모호하다. 안선영씨가 그러한 결론에 이른것은 우리가 현재까지 봐왔던 안선영씨의 모습으로는 전혀 알수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다른말로 우리에겐 그 어떠한 권리도, 의무도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내 자신의 모습을 봤을때도 다른 누군가에게 나타낼 수 없는 약점이 있고 그것은 나도 모르게 어느순간 티가 나고 말때가 있는데, 이번 라스의 안선영씨가 그러한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랍인 친구가 말하길, 내가 하기 싫어하는 그 무엇도 다른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성경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해라했다. 결국 남을 죽이기위한 독을품은 말, 즉 독설은 지구위를 지나쳐간 성자들의 말을 거스른다는 생각도 든다.
안선영씨의 말이 실언이든 개인적인 생각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다른것을 허용할 수 있는 관대함이 필요하다는것을 깨닫는다. 다양성의 관점이 필요할 때가 오늘 이 시대인것 같다. 하지만 이 다양성은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필요한데, 그 기준은 긍정적인 사랑의 잣대가 아닐까. 상대방을 생각해서, 라는 포장을 한 충고의 칼날은 결국 누군가를 죽이게 되고 그 부정적인 영향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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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에 가련다

그 이어질듯 끊길듯 한 길을 꼭 한번은 건너련다.

이 여름이 다가기전에 가련다.

그곳의 냄새를 맡고싶다.

나만의 에세이를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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